2022/2

[하루들] 2월 1일 - 서울행

Snackim 2022. 2. 2. 01:03

결국 마지막날에 성질을 잔뜩 부리고 집을 나왔다. 먹을 고기도 다 처먹고, 용돈 봉투도 받아놓고, 뱉고 싶은대로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고작 KF94 마스크 챙기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매일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그렇게 조심해도 비행기는 못 타는데 무슨 소용이냐. 이런 마음이었다. 물론 엄마 아빠한테 화낼 일이 아닌데. 그렇게 걱정이 듣기 싫어서였다. 잔소리로 들려서였다. 

내 문제인데, 내 감정을 가장 편한 사람에게는 조심하지 않고 말하게 되니까. 

 

날이 싸늘했다. 욕을 계속 뱉으면서 터미널로 걸었다. 숨을 뱉을 때마다 김이 서렸다. 물론 KF94 마스크를 쓴 채로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신호등을 건널 때쯤 후회했다. 걸음마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스쳤다. 언젠가 난 그리워하게 되겠지. 두 분의 잔소리를. 그 염려 자체를. 그 목소리를.

 

눈물이 핑 돈다. 연휴 동안 내내 같이 있으면서 한번도 애틋하지 않았는데. 안쓰럽기는 커녕,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떠나려고 하니까 이런다. 상처를 주고 나니까 이런다.

 

내가 떠난 3일 동안 하수구 냄새가 고여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넓은 집, 거실 한구석 다이소 의자에 앉아 전화를 건다. 아무렇지 않게 내 사과를 받아주지만 목소리에 노기는 가시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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