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이다.
퇴사한 지 벌써 3달이 지났다. 뭘 한 건지 모르겠다. 라고 뱉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회사를 다닐 때도 늘 그래왔듯이. 실은 조금, 예상했듯이.
그렇다고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쉽게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자세히 세어보면 소중할 기억들을 폄하할 각오도 내겐 없다. 분명 거기에는 편안한 휴식도, 선명해지고 싶어 하던 의식의 탐구도, 그리워하던 이들과의 벅찬 만남도 있었다.
단지 퇴사하기 전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했다는 것과,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부터- 한참 멀리, 그것도 팔짱을 낀 채 (다리도 꼬고) 있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예를 들면 영화를 많이 보고 싶었다. 고전 명작부터 섭렵하기 시작해서, 어떤 광적인 디깅을 하는 영화광의 모습이랄까... 시간이 많아지면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총 3편을 봤다. <더 글로리>, <나이브즈 아웃-글래스어니언>, <루카>. <더 글로리>는 자의적인 영상 시청이라기보단 파티에 끌려온 느낌으로 봤다. 물론 꽤 즐거운 파티긴 했어.... <루카>는 혼자서 본 유일한 영화였는데, 그마저 온전한 자세로 볼 수가 없어서 모니터 한쪽에 게임을 켜놨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 퇴사하면 조금씩 글을 쓰겠노라 말하고 다녔지만 이게 첫 글인 것처럼 말이다.
4월 1일이다.
3월 메모 체크리스트에 '블로그 글 최소 1개 작성'이라고 적어놨다. 그러니까 이 글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나서야 쓰는 글이다. 그 밑에는 실패시 모임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글쓰기 모임 모집을 위한 예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역시 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