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기억들] 초등학교 때의 기억 두 가지

5월, 밤에 낙성대 공원을 걸으며 떠올린 기억들 몇 가지를 기록하기 위해 적어둔다. 기억1 자양동에 살 때. 정이네에 꽤 자주 놀러갔다. 우리 집에서 200m 정도의 가까운 곳에 있는 주택이었다. 반 친구들 중 몇이서 모여 정이네 집에서 놀곤 했다. 우리는 거실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공포 영화를 같이 보곤 했다. 같은 유명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제목을 알 수 없는 B급 영화 비디오를 빌려와서 보기도 했다. 그중에 목이 잘린 닭이 뛰어다니는 영상은 꽤나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당과 옥상을 오가며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거실에서 술래가 눈을 가린채 유령놀이를 하다가 히터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머리에 혹이 났던 기억 또한 선명하다. 그때까지는 그 친구를 이성으로 생각해..

2022/6 2022.06.05

상담 3회기, 팡팡 울었다

5월 한 달은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상담이다. 난생 처음 받아본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나를 대하는 법이나, 관계 등등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총 5회기로 예약된 나의 상담은 5월 2일 부터 5월 31일 까지 5월 한 달을 꾹꾹 채워서 끝이 났다. 후련한 기분이다. 특히 기억나는 건 3번째 상담이다. 말하던 도중에 울었다. 쓰려면 길고 민망해지니까 요약하려고 한다. 과거에 대한 상실이 키워드인 것 같다. 뭘 잊어버린 것 같냐는 질문에, 희와 처음 만났던 때를 생각하면서 장면을 떠올리려고 했다. 처음 희를 봤던 공간이나, 희의 표정이나 그런 것들이 머릴 스쳐갔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끄억끄억 소리내며 울었다. 그제..

2022/6 2022.06.01

[하루들] 3월 28일 - 베이스 카피의 기쁨과 슬픔

어제는 꽤 오랜만에 후련한 마음으로 맞이한 일요일 밤이었다. 내게 3월 한 달은 힘든 시간이었다. 툭하면 화가 치밀었다. 회사 차를 운전하다가 괜히 욕을 내 뱉곤 했다. 앞 차를 향해서, 추월하는 택시를 향해서, 회사 사람들을 향해서, 나를 향해서. 블랙박스로 본 세상에 내가 나왔다면 싸이코패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욕을 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촬영 중에도, 편집 중에도, 담배를 피다가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도, 퇴근길에도,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하면서도 그랬다. 허무하다, 언제 끝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생각을 계속 했다. 주말을 보내는 시간 마저 썩 좋지 않았다. 휴식 같지 않았다. 평일을 보상받듯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2022/3 2022.03.29

[하루들] 2월 2일 - 당근의 날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며칠 전부터 오늘을 당근 거래의 날로 삼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쏘카로 뒷자석이 접히는 SUV를 빌려놨다. 대충 짐이 실릴 수 있는 크기를 검색했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들의 크기를 계산했다. 한번에 집으로 옮길 수 있는 크기와 거리를 따져서 미리 약속을 잡아놨다. 새 집에 이사한 지 2주차, 살림살이를 늘리는 재미를 한창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흥분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거래 하나가 취소됐다. 소파 스툴과 사이드 테이블을 거래하기로 한 사람이 PCR 검사와 기차표 문제로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당일 거래가 어렵다고 채팅이 왔다. 애초에 계획한 구매가 4건이었는데, 그 중 2건을 약속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니 김이 샜..

2022/2 2022.02.03

[꿈일기] 행성 파괴, 죽음

간밤에 꿈을 꿨다. "내일 다 죽는대!" 문을 열면서 말을 내뱉은 사람의 표정은 복잡했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공감을 받고 싶은 것 같기도,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과학자들 말이 운석이 충돌해서 다 죽는대" "100퍼센트래" 누군가가 덧붙였다.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언가가 하늘에서 날아와 땅을 때렸다. 펑. 소리와 함께 노란 불빛이 번쩍했다. 내일이라며? 꿈속에서 허용되는 간주 점프인지,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어느 국가가 못 참고 핵미사일을 발사한 걸지도 모른다. 충격의 반동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날아갔다. 충격의 반대 방향으로. 세상 밖으로. 어둠 속으로. 나는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며 부서질 듯 흔들렸다. 이제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2 2022.02.02

[하루들] 2월 1일 - 서울행

결국 마지막날에 성질을 잔뜩 부리고 집을 나왔다. 먹을 고기도 다 처먹고, 용돈 봉투도 받아놓고, 뱉고 싶은대로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고작 KF94 마스크 챙기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매일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그렇게 조심해도 비행기는 못 타는데 무슨 소용이냐. 이런 마음이었다. 물론 엄마 아빠한테 화낼 일이 아닌데. 그렇게 걱정이 듣기 싫어서였다. 잔소리로 들려서였다. 내 문제인데, 내 감정을 가장 편한 사람에게는 조심하지 않고 말하게 되니까. 날이 싸늘했다. 욕을 계속 뱉으면서 터미널로 걸었다. 숨을 뱉을 때마다 김이 서렸다. 물론 KF94 마스크를 쓴 채로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신호등을 건널 때쯤 후회했다. 걸음마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스..

2022/2 2022.02.02

[하루들] 1월 30일 - 명절에 괜히 해보는 부정적인 생각들

시간이 흐르는 게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설을 맞아 내려온 집에서 더 그렇다.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는 거실에서, 굳이 내 우울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가 웃기지도 않는 개그 프로그램을 본다. 오늘도 하루가 끝나간다. 일찍이 받은 사형선고일을 다시 확인한 기분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서른 넷,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란 건 안다. 단지 내 삶이 앞으로 반복될 것이며 그 각도는 내리막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신체적인 능력도, 감정을 느끼는 횟수도, 가치를 향한 의욕도, 모두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속도는 점차 빨라지며, 이런 상실에 대한 느낌조차 희미해져간다. 이런 표현들은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라 건조한 사실로 다가온다. 가끔은 지나가는 시간을 글이나 가사로 묶어보려 하지만, 진작에 모가 닳..

2022/1 2022.02.01

[하루들] 1월 8일 - 비틀즈, 빌리 프레스턴, 10년 전

2022년. 토요일 낮.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레토르트 삼계탕을 먹으며 을 틀어놓고 있었다. 비틀즈가 새 앨범을 위해 애플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던 1969년 1월 22일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비틀즈의 녹음 세션에 빌리 프레스턴이라는 건반 연주자가 합류한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금방 마음에 들었다. 서글서글한 웃음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친 전자 피아노 소리도 좋았다. 무엇보다 빌리 프레스턴이 합류하자 지난하던 편곡 과정이 단숨에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음원으로 듣던 비틀즈의 그 곡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틀즈 멤버들이 그를 처음 만난 건 함부르크에서부터라고 했다. 나는 영상 속에서 그들의 재회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10년. 10년 전에 내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2022/1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