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

[하루들] 1월 8일 - 비틀즈, 빌리 프레스턴, 10년 전

Snackim 2022. 1. 9. 02:13

 2022년. 토요일 낮.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레토르트 삼계탕을 먹으며 <비틀즈 : 겟 백>을 틀어놓고 있었다. 비틀즈가 새 앨범을 위해 애플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던 1969년 1월 22일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1969년 1월 22일, 애플 스튜디오

 

 비틀즈의 녹음 세션에 빌리 프레스턴이라는 건반 연주자가 합류한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금방 마음에 들었다. 서글서글한 웃음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친 전자 피아노 소리도 좋았다. 무엇보다 빌리 프레스턴이 합류하자 지난하던 편곡 과정이 단숨에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음원으로 듣던 비틀즈의 그 곡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1969년의 빌리 프레스턴

 

 비틀즈 멤버들이 그를 처음 만난 건 함부르크에서부터라고 했다. 나는 영상 속에서 그들의 재회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10년. 10년 전에 내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을 재생해보려 했다.

 

 2012년. 제대하고 반년이 흘렀을 때다. 몇몇 대학 동기들과 같은 시기에 복학했다. 갑자기 명륜동에서 지내며 보냈던 기억 속 장면들이 산만하게 흩어졌다. 추운 겨울밤에 하늘색 수면바지를 입고 편의점을 가던 룸메이트 재성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게임 하던 찬웅이, 성수형, 세진형, 우리가 살던 복층 투룸의 풍경들, 집 밖의 내리막길, 골목을 나서면 이어져 있는 작은 가게들의 모습이 짧은 프레임의 인서트처럼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한창 열심히 했던 밴드와 합주실의 풍경도 떠올랐다. '열심히'라는 단어로 묘사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게 내 최선이었던 것 같다. 만약 음악을 업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 라는 생각도 들었다. 10년 동안. 비틀즈처럼.

 아주 희미한 상실감이 어딘가를 찔렀다. 그건 한 번쯤 꿈꾸었던 멋진 뮤지션이 되지 못해 느끼는 좌절이나 후회가 아니라, 외로움에 가까웠다. 내 옆에 음악이 없어서. 내 옆에 음악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없어서.  

 

 유튜브를 열고 빌리 프레스턴을 검색했다. 그가 조지 해리슨의 추모 공연에서 <My Sweet Lord>를 부르는 영상이 나왔다. 화질이 너무 좋아서 최근 영상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2002년 영상이라고 한다.

 2002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비틀즈 : 겟 백>으로부터는 30년이 넘게 흘렀다.

 

2002년의 빌리 프레스턴

 

 그는 죽은 친구의 노래를 부른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옆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폴과 숱이 적은(...) 링고도 있다. 한때는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을 동료 음악가들이 연주하며 서로 눈을 맞춘다. '열심히', 그리고 수줍게 연주한다. 비틀즈의 긴 역사와 함께 했을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괜스레 울컥해서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갑자기 20년 전에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진 걸까? 혹은 클릭 한번에 갑자기 30년 넘게 나이가 들어버린 빌리의 모습을 봐서일 수도 있다. 혹은 다시 어떤 상실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없는, 아마 없을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이라서.

 

 그러고 나서 꽤 개연성은 없지만, 미안함과 책임감이 들었다. '내가 사랑해야지, 누가 사랑하겠어?' 같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내 세계와 관계를 지켜주겠어? 같은 마음. 지나온 시간들에게 조금은 미안하다고 해주고 싶어졌다. 10년 전으로부터 온 상실감이 방치된 오늘을 만난 듯했다.

 

 

2022년의 봉천동, 여기도 마침 1월이다.

 

 음악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조금 더 좋아할 수 있을까. 누가 알아줄 정도로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좋으니까. 이렇게 위로도 받고 신나게 하니까. 천천히라도 계속... 친구들과 더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더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래 옆에 있고 싶다. 

 

 


 

 

Watch The Beatles rehearsing “Don’t Let Me Down” in "The Beatles: Get Back"

 

Billy Preston - My Sweet Lord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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