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

[하루들] 1월 30일 - 명절에 괜히 해보는 부정적인 생각들

Snackim 2022. 2. 1. 23:33

시간이 흐르는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설을 맞아 내려온 집에서  그렇다.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는 거실에서, 굳이 내 우울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가 웃기지도 않는 개그 프로그램을 본다. 오늘도 하루가 끝나간다. 일찍이 받은 사형선고일을 다시 확인한 기분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서른 넷,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란 건 안다. 단지 내 삶이 앞으로 반복될 것이며 그 각도는 내리막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신체적인 능력도, 감정을 느끼는 횟수도, 가치를 향한 의욕도, 모두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속도는 점차 빨라지며, 이런 상실에 대한 느낌조차 희미해져간다. 이런 표현들은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라 건조한 사실로 다가온다. 가끔은 지나가는 시간을 글이나 가사로 묶어보려 하지만, 진작에 모가 닳았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좋은 삶을 모르겠으면 숫자라도 좇을까? 한달에 한번 회사 이름이 뜨는 입금 기록이 구원일 때가 있다. 숫자를 높이는 삶만큼 선명한 목표가 없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낳으면 만족할까?  인생을 모르겠으니 자녀의 삶을 통해 리플레이 해보며 대리만족 하는 건 아닐까. 물론  장난 같은 마음에 호응할 반려자도 없고, 있어서도  된다.

혹은 사랑의 도피를 떠날까? 에라 모르겠다- 유럽행 비행기를 끊는다거나, 갑자기 치명적인 상대가 나타나 구애를 한다거나, 나를 보며 눈에 빛을 내는 관객들이 있는 무대에 선다거나...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본다. 개연성 없는 상상들. 현실에서는 뛰어넘을  없는 비약. 그냥 마취다.

도망이 아니라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방법을 모르겠다. 늘 같은 자리를 맴돌다 패배한다. 유일한 탈출로는 다른 자극이다. 예를 들면 침착맨이라거나.

혹은 월요일이 오거나. 혹은 더 나이드는 것이겠지.

 

물론 좋아하는 것들은 있다. 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다만 기대가 별로 안 된다... 

 

-가 괴롭다. -가 무섭다. -가 하기 싫다. -가 귀찮다.

이런 문장들은 무한으로 적층 가능하다. 어떠한 현실 가능성도 담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게 제한이 없다. 마음껏 뱉을  있기 때문에, 내 의식에 안개처럼 잔뜩 깔려있다. 

 

-를 하고 싶다. -를 할 거야. -를 해야지.

반대로 어떤 욕망의 문장들은 숨을 몇번 쉬어야  밖으로 뱉을  있는 말들이다. 욕망의 실천 시공간의 무게를 갖는다. 내가 안고 걸을  있는 언어에는 용량 제한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의 추는 자연스레 '할  없다'는 쪽으로 기운다.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부정적인 마음에 깔려 있는  당연한 균형인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만이 다시 객관적일  있다. 

크게 움직여야 한다. 안개같은 말들을 털어낼  있게. 

무게가 있는 언어들, 나를 꿰뚫었 언어들만 안고   있게. 몸을  펴야 한다.

호흡을 가쁘게 해야한다. 숨을 잔뜩 쉬어야만 간신히 뱉을 수 있는 문장들이 내 세상을 채우도록.

 

라고 거실 탁자에 앉아 끼적거린다.

불평가득한 표정을 짓고 잔뜩 들키고 싶은 마음이다.

달리고 싶다. 내일 아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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