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Q

낙성대역 커피빈이 사라짐

Snackim 2023. 5. 12. 19:03

 커피빈에 가려고 애써서 집에서 나왔다. 그게 오후 한시반쯤. 나름 꽤 걸어야 도착한다. 근데 웬 걸, 간판이 사라졌지 뭐야. 횡단보도를 건너오면서 허탈했다. 조용하고 넓은 카페라서 좋아했는데. 아마도 같은 이유로 없어진 것이겠지만. 마음에 퍽 들어서 멤버십 앱도 깔고 충전도 해서 쿠폰도 받았다. 오늘도 쿠폰을 쓰려고 했다.  다른 커피빈에 가볼까? 가까운 곳은 서울대입구역 지점. 하지만 거긴 사람이 많다. 특히 어린 흡연자들. 창문도 다 열어놓고 뭔가 시끄러워 보인다. 그다음은 방배동 카페골목. 버스를 하나 타면 23분. 까짓거 이렇게 된 거 새로운 동네 구경한다 셈치고 가보자. 다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나 버스정류장 앞에서 다시 생각했다. 에바야. 시간을 들여 뻔한 데를 갈 바에야 그냥 동네에 다른 카페를 가자. 하지만 아는 곳 중에서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스타벅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근처에 아는 로컬 카페는 맛이 없다. 그래서 한번도 안 가본 카페로 고고싱.

 

로고 하나만 남겨놓고 갔네


 
 솔이네커피볶는집. 여기는 산책을 다니다 몇번 보긴 했다. 잡동사니가 놓여진듯한 약간 올드하지만 뭔가 푸근한 분위기. 사장님은 왠지 진보 성향의 아저씨일 것 같다... 라는 마음껏 편견을 가지며 소이라떼를 시켰다. 넓었다. 사람도 없었다. (중간에 많아졌으나 여유로웠다) 라떼도 맛있다! 온전히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낯선 공간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금방 드러났다. 브금이 별로다.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 연달아 나왔던 아이유 노래는 괜찮았다. (아무 계획 없이 아이유만 틀어도 평균 이상의 선곡이 될 거다) 그런데 점점 울부짖는 발라드가 나온다. 약간 가라오케식 발라드는 아니고, 나가수나 불후의 명곡에서 나올 법한 리메이크&라이브편곡된 곡들이다. 그냥 아무 클래식이나 F펑크, 재즈만 틀어놓어도, 심지어는 노래를 틀지 않아도 90점은 할텐데...... 사장님 취향이겠지? 존중합니다.

 

 

 우연히 시작된 여정이 항상 설렘만큼의 결과를 주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다. 항상 성공적이지 않은 날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끔 좋은 사건들이 기막히게 느끼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어느정도는 오늘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기억한 채 흘려보내야지. 
 편지랑 글을 조금 적고 보니 거의 세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냉면집에 들렀다. 여름 냉면을 개시했다. 비냉이었지만. 여기는 식전에 나오는 따뜻한 육수가 정말 맛있다. 속으로 기도했다. 여기는 사라지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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