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꿈을 꿨다.
"내일 다 죽는대!"
문을 열면서 말을 내뱉은 사람의 표정은 복잡했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공감을 받고 싶은 것 같기도,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과학자들 말이 운석이 충돌해서 다 죽는대"
"100퍼센트래"
누군가가 덧붙였다.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언가가 하늘에서 날아와 땅을 때렸다. 펑. 소리와 함께 노란 불빛이 번쩍했다. 내일이라며? 꿈속에서 허용되는 간주 점프인지,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어느 국가가 못 참고 핵미사일을 발사한 걸지도 모른다.
충격의 반동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날아갔다. 충격의 반대 방향으로. 세상 밖으로. 어둠 속으로. 나는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며 부서질 듯 흔들렸다.
이제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잠에서 깨려 해도 깰 수 없겠지. 악몽을 꾸다 발가락에 힘을 주면 깨어났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건 현실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전부 그렇다.
극도의 불안이 찾아왔다. 마치 어렸을 때 죽으면 어떻게 되지? 라는 의문을 처음 가져보았을 때처럼. 죽음 뒤에는 그 어떤 기억도, 공포를 느낄 감각도, 상실을 설명할 언어도 남지 않을 거라는 '없음'에 압도당했었다. 그리고는 울면서 엄마 아빠의 방으로 달려갔다. 당시의 아빠는 불교의 윤회에 대해 얘기했다.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부모의 온기가 어린 나를 잠들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부모는 물론, 내 옆에는 어떤 생명체도 없다. 곧 없어질 것이다. 내가 죽어도 남아 있을 그 어떤 사람도 남지 않는, 진짜 끝이다. 나는 일말의 가능성으로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라며 계속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눈을 떴다. 비록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진 않았지만. 공포가 가라앉고 내 방이 드러났다. 안도감이 들었다.
내일이면 다 죽는대! 생생한 꿈이었다. 어쩌면 멀지만 예약된 미래인지도 모른다.
꿈에서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서, 딱히 삶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내 인생에 충분히 다양하고 과잉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
세계는 이미 디스토피아인 것 같다.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던 시대가 오히려 낭만이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미래가 현실과 계속 중첩되어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알 수 없는 기술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실험과 파괴가 일어나고, 지구라는 우주선이 내가 모르는 곳으로 이미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코 앞에 인류의 멸망이 닥쳐있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정말로 관측하지도 못할 속도로 소행성이 날아와 지구를 박살 내버릴 것만 같다. 혹은 거대한 권력의 음모 때문이라거나, 갑자기 지구의 자전이 멈춰선다거나. 그럼 자는 사이에 우리는 '없음'이 되겠지. 두렵다.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는, 펜도 종이도 하나 주어지지 않을 죽음이 두렵다.
화면이 펼쳐진다. 탄식으로 가득 찬 앞으로의 인생이 그려진다. 사형일을 기다리는 죄인과 같다. 시간은 빠르다. 너무 짧다. 후회와 증오와 분노로 가득할 내 미래가 그려진다.
-
나중에 든 생각인데, <돈 룩 업>에 대한 스포를 당하고 나서 이 꿈을 꾼 게 아닌가 했다. 그래서 연휴에 고향 가는 버스에서 보려 했지만 졸려서 꺼버렸다.
'2022 >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들] 2월 2일 - 당근의 날 (0) | 2022.02.03 |
---|---|
[하루들] 2월 1일 - 서울행 (0) | 2022.02.02 |